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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위치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용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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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기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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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연도1993년~1994년·1998년
임영관지는 강릉시 용강동에 위치한 국보 제 51호 객사문(客舍門)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유적이다.
동 유적은 우리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1993년 10월 중순부터 2개월간의 시굴조사를 거친 다음 1997년 12월 중순부터 1998년 6월말까지 약 4개월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노출된 건물지 유구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의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어 강릉 객사였던 임영관은 고려초기부터 1927년 일제에 의해 헐릴 때까지 계속 전속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발굴조사 결과 노출된 건물지들로는 전대청지, 회랑지, 중대청지, 동대청지, ㄷ자 석열유구, 연도유구 등 모두 9개의 건물지 유구가 노출되었고 이들 건물지의 적심석들은 그 자리에서 2차례 정도 약간씩 옮겨 복잡하게 노출되었으나 비교적 잘 남아있는 상태였다. 현재 노출된 건물지 유구는1633년과 1636년(인조 46)에 2차례에 걸쳐 중창된 건물지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로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연꽃무늬 수막새와 암막새, 중기 이후의 휘안무늬 암·수막새와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임영관지의 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관아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동 유적은 우리 강릉대학교 박물관에서 1993년 10월 중순부터 2개월간의 시굴조사를 거친 다음 1997년 12월 중순부터 1998년 6월말까지 약 4개월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노출된 건물지 유구에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까지의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어 강릉 객사였던 임영관은 고려초기부터 1927년 일제에 의해 헐릴 때까지 계속 전속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발굴조사 결과 노출된 건물지들로는 전대청지, 회랑지, 중대청지, 동대청지, ㄷ자 석열유구, 연도유구 등 모두 9개의 건물지 유구가 노출되었고 이들 건물지의 적심석들은 그 자리에서 2차례 정도 약간씩 옮겨 복잡하게 노출되었으나 비교적 잘 남아있는 상태였다. 현재 노출된 건물지 유구는1633년과 1636년(인조 46)에 2차례에 걸쳐 중창된 건물지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로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연꽃무늬 수막새와 암막새, 중기 이후의 휘안무늬 암·수막새와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임영관지의 발굴조사 결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지 유구가 양호한 상태로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고려시대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관아성격의 건물지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